원래 계획된 포스팅은 아니고, 그냥 즉흥적으로 작성해본다.


몇 분 전, 나는 늘 하는 대로 유튜브를 둘러보면서 관심가는 대로 광고를 아무 거나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광고를 보게 되었다. 1992년 미국에 방영된, BMW 325i 광고이다. 화질은 좀 나쁜 편이지만 양해 바란다.



뭐 별다를 건 없는 평범한 자기자랑류(?) 광고인데,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멜로디(0:31~)를 들었을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기시감은 아니고 기청(聽)감이랄까. 그래서 이걸 어디서 들어봤지 하고 떠오르는 광고를 찾아보았다.


아래의 광고는 위 광고와 같은 해인 1992년, 한국에 방영된 기아 세피아의 출시 전 홍보 광고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멜로디(0:23~)를 잘 들어보라.




얼마나 비슷하길래 들어본 느낌이 든 걸까 하면서 들어보았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비슷한 게 아니고 똑같았던 것이다. 셔터 소리까지 똑같다!


325i 광고에서 해당 멜로디는 앞의 음악과 연결되어서 나오는 것이지만, 세피아 광고에서 해당 멜로디는 앞의 음악과는 상관없이 나오는 것이기에, 325i 광고에 나온 멜로디를 세피아 광고에서 가져다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작성하면서 더 찾아본 결과 1991년 325i 광고에서도 같은 멜로디가 쓰인 것이 확인되어서(링크) 전후관계에 있어서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걸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그렇지만 가져다 쓴 것은 가져다 쓴 것이다. 허가를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1990년대까지 노골적인 표절마저도 횡행하던 한국 광고계를 볼 때(그리고 아직도 이따금씩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광고가 보인다), 그랬을 가능성은 낮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사실 나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음악은 아니다. 아래는 1984년 미국에 방영된, 제너럴 일렉트릭의 'Build A Phone' 광고이다. 이 광고도 그냥저냥 평범한 내용이다. 내구성 좋아요, 사후지원 잘해줘요, 기타등등. 17초부터 나오는 회로 기판 장면을 눈여겨보라.



그리고 아래 광고는 4년 뒤인 1988년, 한국에 방영된 대우자동차의 89년형 르망 광고이다. 10초부터 잠깐 나오는 회로 기판 장면을 위 광고와 비교하며 보기 바란다.



이 경우에도 영상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광고는 해당 장면이 계속해서 뒤로 이어지는 데 비해 르망 광고는 잠깐 나오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명확하다(애초에 나온 년도부터가 4년이나 차이나지만).


...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대목이었다. 당시 국내 광고인들이 이런저런 광고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하게 많이 참고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서도, 한편으로는 공중파에 송출되는 광고일텐데도, 다른 광고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뭔가 찝찝한 뒷맛이다. 그 때 인터넷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당사자 아니고서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사례를 언젠가 또 찾게 된다면, 나는 더 흥미로워하면서도, 더 씁쓸해할 것 같다. 언젠가 표절 광고 사례도 몇몇 포스팅해볼 텐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쪽이 좀 더 '기가 찬' 물건들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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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rd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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